작성자 노중평 작성일 2007-09-29 조회수 237
드디어 절망으로 가는 사회가 되다
노중평
내가 관여하고 있는 모임이 하나 있는데, 1년에 한 번 회원들의 원고를 모아서 책을 만든다. 회원들은 문단에 등단해야 한다는 요
식행위를 거친 사람들로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대부분 현직에서 은퇴한 사람들이다.
책 편집을 마무리작업을 하던 날 젊은 편집자가 나와 함께 사무실을 나오며 내게 말했다.
“선생님, 우리나라가 이제는 희망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월급을 타서 결혼하기 힘들고, 부모가 사주지 않으면 집을 살 수도 없고,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교육을 시킬 수 없고......”
말하는 그의 얼굴이 어둡다.
나는 그 젊은 편집자가 결혼을 했는지 아니 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결혼을 했느냐고 묻고 싶지 않았다. 우리를 절망시키는
첫째는 교육이고 둘째는 집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는 자신을 느끼고 있다. 그 거리가 멀면 멀어질수
록 절망의 양도 비례한다.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이 나라의 앞날에 대하여 절망하고, 늙은이는 늙은이대로 자신의 앞날에 대
하여 절망하고 있다.
나는 내 인생을 둘러본다. 공직생활을 할 때는 근면성실하다는 평을 들었다. 상사에게 아첨한 적이 없었다. 부하직원에게는 매사
에 공평하게 대하려고 하였다. 재직 중에 혼장· 포장· 대통령표창· 그 외에 여러 가지 표창을 탔다. 그렇다고 로비를 해서 표창을
탄 적도 없었다. 다만 상복이 있어서 상을 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차라
리 저금통장에 단 돈 1백만 원이 입금되어 있는 것만 못하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다 늙어 집을 가지고 있으면 뭐하나. 그 집 팔아서 전세로 가고 그 돈으로 살아가는 게 나을 게야.”
“돈이 다 떨어지면 어떡하고?”
“굶어 죽는 거지.”
“그렇다고 굶어 죽을 수는 없지 않아?”
어쩌다가 이렇게 암담한 현실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공교롭게도 집을 팔고 나서 정부에서는 검단신도시계획을 발표하였다. 집값이 오를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던 내가 살던 동네 집값
이 갑자기 2천만 원이나 치솟았다고 한다. 평생을 이렇게 돈을 피하며 살아왔다.
내가 젊은 편집자에게 말한다.
“그거야 생각하기에 달렸지. 전 국민이 임대주택에 살 생각만 가지면 해결이 되는 문제일 텐데.......”
젊은 편집자가 빙그레 웃는다.
“그래도 사회가.......우리를 벼랑으로 몰고 가지 않습니까?”
“그래. 벼랑 끝으로 내몰리기 전에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하겠지. 투기꾼을 쫓아가려니까 절망하게 되는 거야. 우리는 투기꾼이
아니니까 내 집 안 갖기 운동이라도 해 보자고. 우리를 살리는 일을 그 일에서 시작해 보는 거야.”
내 자신이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데 횡설수설 하고 있는 것 같다.
오후 1시에는 은퇴한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날이다. 젊은 편집자와 헤어져 우리가 만나기로 한 교보문고 앞으로 간다. 각자 사정
이 있겠지만 우리 멤버 6명 중에 4명이 최근에 약속이나 한 듯이 이사를 했다.
"이건 우연치고는 묘한데."
공직에서 은퇴한 친구가 말한다.
"기운이 바뀌고 있는 거야."
내가 말한다.
"무슨 기운인데?"
국영기업에서 은퇴한 친구가 묻는다.
"혁명의 기운이지."
점심을 먹기 위하여 청계천 입구에 있는 대구볼탕집으로 간다.
“이제 서울 사람은 이 친구 하나 남았군.”
내가 말한다. 건설회사에서 은퇴한 친구를 지목한다.
“우리는 모두 경기도사람이군.”
국영기업에서 은퇴한 친구가 말한다.
“이사를 잘못하면 죽는다던데.”
교직에서 은퇴한 친구가 말한다.
“살만해지면 죽는다는 게야.”
공직에서 은퇴한 친구가 말한다.
“처지를 낮추어 가면 안 죽어. 높여가면 죽는 거야.”
내가 말한다. 처지를 낮추어 이사 간다고 천년만년 살 것은 아니겠지만.
점심을 먹고 나서 건설회사에서 은퇴한 친구와 나 두 사람만 남았다. 둘이서 전철을 타려고 을지로 입구 쪽으로 가니 울긋불긋한
깃발을 어지럽게 휘날리며 데모대들이 종로 쪽을 향하여 올라오고 있다. 상행차선 하나를 점령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중무장한
군대처럼 무시무시한 모습이다. 데모대들을 보면 나라가 곧 망하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었일까?
“열린 정부가 들어서면 저들이 점잔아 질줄 알았더니 더 극성맞아졌어.”
우리가 투덜거린다.
작성자 노중평 작성일 2007-09-29 조회수 237
드디어 절망으로 가는 사회가 되다
노중평
내가 관여하고 있는 모임이 하나 있는데, 1년에 한 번 회원들의 원고를 모아서 책을 만든다. 회원들은 문단에 등단해야 한다는 요
식행위를 거친 사람들로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대부분 현직에서 은퇴한 사람들이다.
책 편집을 마무리작업을 하던 날 젊은 편집자가 나와 함께 사무실을 나오며 내게 말했다.
“선생님, 우리나라가 이제는 희망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월급을 타서 결혼하기 힘들고, 부모가 사주지 않으면 집을 살 수도 없고,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교육을 시킬 수 없고......”
말하는 그의 얼굴이 어둡다.
나는 그 젊은 편집자가 결혼을 했는지 아니 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결혼을 했느냐고 묻고 싶지 않았다. 우리를 절망시키는
첫째는 교육이고 둘째는 집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는 자신을 느끼고 있다. 그 거리가 멀면 멀어질수
록 절망의 양도 비례한다.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이 나라의 앞날에 대하여 절망하고, 늙은이는 늙은이대로 자신의 앞날에 대
하여 절망하고 있다.
나는 내 인생을 둘러본다. 공직생활을 할 때는 근면성실하다는 평을 들었다. 상사에게 아첨한 적이 없었다. 부하직원에게는 매사
에 공평하게 대하려고 하였다. 재직 중에 혼장· 포장· 대통령표창· 그 외에 여러 가지 표창을 탔다. 그렇다고 로비를 해서 표창을
탄 적도 없었다. 다만 상복이 있어서 상을 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차라
리 저금통장에 단 돈 1백만 원이 입금되어 있는 것만 못하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다 늙어 집을 가지고 있으면 뭐하나. 그 집 팔아서 전세로 가고 그 돈으로 살아가는 게 나을 게야.”
“돈이 다 떨어지면 어떡하고?”
“굶어 죽는 거지.”
“그렇다고 굶어 죽을 수는 없지 않아?”
어쩌다가 이렇게 암담한 현실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공교롭게도 집을 팔고 나서 정부에서는 검단신도시계획을 발표하였다. 집값이 오를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던 내가 살던 동네 집값
이 갑자기 2천만 원이나 치솟았다고 한다. 평생을 이렇게 돈을 피하며 살아왔다.
내가 젊은 편집자에게 말한다.
“그거야 생각하기에 달렸지. 전 국민이 임대주택에 살 생각만 가지면 해결이 되는 문제일 텐데.......”
젊은 편집자가 빙그레 웃는다.
“그래도 사회가.......우리를 벼랑으로 몰고 가지 않습니까?”
“그래. 벼랑 끝으로 내몰리기 전에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하겠지. 투기꾼을 쫓아가려니까 절망하게 되는 거야. 우리는 투기꾼이
아니니까 내 집 안 갖기 운동이라도 해 보자고. 우리를 살리는 일을 그 일에서 시작해 보는 거야.”
내 자신이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데 횡설수설 하고 있는 것 같다.
오후 1시에는 은퇴한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날이다. 젊은 편집자와 헤어져 우리가 만나기로 한 교보문고 앞으로 간다. 각자 사정
이 있겠지만 우리 멤버 6명 중에 4명이 최근에 약속이나 한 듯이 이사를 했다.
"이건 우연치고는 묘한데."
공직에서 은퇴한 친구가 말한다.
"기운이 바뀌고 있는 거야."
내가 말한다.
"무슨 기운인데?"
국영기업에서 은퇴한 친구가 묻는다.
"혁명의 기운이지."
점심을 먹기 위하여 청계천 입구에 있는 대구볼탕집으로 간다.
“이제 서울 사람은 이 친구 하나 남았군.”
내가 말한다. 건설회사에서 은퇴한 친구를 지목한다.
“우리는 모두 경기도사람이군.”
국영기업에서 은퇴한 친구가 말한다.
“이사를 잘못하면 죽는다던데.”
교직에서 은퇴한 친구가 말한다.
“살만해지면 죽는다는 게야.”
공직에서 은퇴한 친구가 말한다.
“처지를 낮추어 가면 안 죽어. 높여가면 죽는 거야.”
내가 말한다. 처지를 낮추어 이사 간다고 천년만년 살 것은 아니겠지만.
점심을 먹고 나서 건설회사에서 은퇴한 친구와 나 두 사람만 남았다. 둘이서 전철을 타려고 을지로 입구 쪽으로 가니 울긋불긋한
깃발을 어지럽게 휘날리며 데모대들이 종로 쪽을 향하여 올라오고 있다. 상행차선 하나를 점령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중무장한
군대처럼 무시무시한 모습이다. 데모대들을 보면 나라가 곧 망하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었일까?
“열린 정부가 들어서면 저들이 점잔아 질줄 알았더니 더 극성맞아졌어.”
우리가 투덜거린다.